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1968년 미국 대통령 선거 (문단 편집) ==== [[로버트 F. 케네디]]의 등장, 그리고 암살 ==== 본래 [[로버트 F. 케네디]]는 1968년 대선에 출마할 생각이 없었다. 이미 일찌감치 그는 1966년 차기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린든 B. 존슨]]의 압도적인 당권 장악력으로 인해 승리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물론 대중적인 지지도는 높았으나, 이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경선은 당원의 지지를 파악하는 요식 행위였고 실제로는 당의 실세[* 존슨 대통령, 험프리 부통령, 데일리 시카고 시장 등.]들의 영향을 받는 대의원단이 사실상 대선 후보를 결정했다. 이 때문에 로버트 케네디가 경선에서 아무리 압도적인 득표를 얻어도 존슨이 출마하는 이상은 후보 지명을 받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3월 12일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에서 존슨이 당하는 것을 본 로버트 케네디는 마음을 바꿔, 뉴햄프셔 프라이머리 직후인 3월 16일 기존의 입장을 180도 뒤집고 차기 대선에 출마하겠다고 밝혔다. [[유진 매카시]] 캠프는 경악했다. 매카시 캠프의 한 관계자는 "크리스마스 아침날에 막 일어났는데 누가 선물을 다 훔쳐간 셈"이라며 로버트 케네디의 기회주의적인 행보에 분통을 터트렸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Bobby 1968 1.webp|width=100%]]}}} || || '''흑인 거주지에서 유세하고 있는 로버트 F. 케네디''' || 로버트 케네디의 핵심 지지층은 흑인들이었다. 반면, 유진 매카시는 지식인 계층의 지지를 받았다. 로버트 케네디는 기회주의자 논란이 있었던데다, 백인 노동자 계층으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하였으므로 핸디캡이 있었다. 그러나 1968년 5월 7일, 패배할 것으로 예상되었던 [[인디애나]] 주 프라이머리에서 42%를 얻어 존슨과 험프리의 지지를 받은 로저 브래니진(31%)과[* 인디애나 주의 "Favorite Son"이다. 쉽게 말하자면, 주에서 지지를 많이 받는 의원을 프라이머리에 내보내 대의원을 확보한 다음에 전당대회 투표에서는 다른 후보를 지지하도록 하여 대의원단 획득 수에서 이점을 취하려는 일종의 꼼수이다.] 매카시(27%)를 모두 큰 차이로 꺾고 1위로 올라섰다. 1968년 4월 마틴 루터킹의 사망은 로버트 케네디에게 더욱 힘을 실어주었다. 로버트 케네디는 "한때 마이너리티 집단이었던 아일랜드계에서 [[존 F. 케네디|대통령을 냈듯]] 언젠가 당신 흑인들도 [[버락 오바마|여러분들의 대통령을 갖게 될것]]"이라는 연설을 해 흑인들로부터 광적인 지지를 받았고 열성 지지자들에 의해 옷까지 찢겨가며(...) 유세를 이어나갔다. 그러나 로버트 케네디는 두가지의 현실적인 한계에 부딪혔다. 첫번째로 로버트 케네디가 모든 경선에서 승리한다고 할지라도 실제 지명을 받았을 확률은 낮았다는 점이다. 상술했다시피 경선 결과보다 간선 대의원이 더 큰 영향을 미쳤는데 로버트 케네디를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극혐했던 존슨이 케네디를 놔둘 리 없었다. 두번째로 안그래도 부족한 경선 대의원단이 유진 매카시에 의해 분열되고 있었다. 심지어 시간이 지날수록 유진 매카시의 지지율이 회복된 반면 케네디의 지지율은 떨어졌다. 로버트 케네디는 베트남 전쟁에 찬성했으나 이후 월남전 여론이 나빠지자 입장을 바꿨고 이로 인하여 기회주의자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로버트 케네디는 배수진을 쳐 캘리포니아 주 프라이머리에서 매카시에게 밀리면 경선 후보직을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로버트 케네디는 캘리포니아 프라이머리에서 부진하긴 했으나, 열성적인 유세로 46% 대 42%로 매카시를 꺾고 1위를 차지했다. 그런데 로버트 케네디가 캘리포니아에서 승리를 확인한 직후 '''암살당하는 일이 일어났다!''' 유력 주자를 잃은 민주당은 혼란에 빠졌고 민주당 지지자들과 흑인들은 슬픔에 빠졌다. 로버트 케네디의 지지자들은 그의 동생 [[테드 케네디]]나 로버트 케네디의 측근 [[조지 맥거번]]을 대타 후보로 내세워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았고 테드 케네디는 경선 참여를 거부했으며 맥거번은 뒤늦게 경선에 참여했으나 대중의 지지를 얻기에는 시간이 형편 없이 부족했다. 이로 인하여 경선이 종료된 시점에서 매카시는 38.7%, 로버트 케네디는 30.6%를 얻은 것으로 나타나며, 매카시가 남은 경선 일정에서 승리하여 우위를 확보한 것으로 나타났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